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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벡스의 공지사항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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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1]
지난 2월 15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세 차량에서 선거운동원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국민의당 논산·계룡·금산 지역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고 손평오씨와 해당 차량을 운행하던 버스기사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다. 같은 날 강원 원주 지역에서도 국민의당 유세 차량을 운행하던 버스기사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현재까지도 그는 의식불명이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선거 유세를 위해 버스 벽면에 LED 전광판을 부착했는데, 이를 가동하는 전력을 얻기 위해 버스 화물칸에 가솔린 발전기를 별다른 환기 장치도 없이 설치한 탓이었다. 경찰의 현장 감식 결과 발전기 가동 시에 버스 내부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1500〜2250ppm으로 측정됐다. 1시간 정도만 머물러도 의식을 잃을 수 있는 치사량(致死量)에 가까운 수치다. 차량을 불법으로 개조한 업체 관계자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됐고, 안철수 대표에게는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까지도 거론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대선 기간에 발생한 악재성 해프닝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치권의 추모 움직임과 책임 소재 규명 시도와는 별개로 해당 사고는 대규모 인명 참사가 유예된 형태라는 점에서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45인승 버스에 선거운동원을 가득 태우고 전국적 규모로 운용되었다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빠르게 발견했어도 이들 중 다수가 사망하거나 영구적 장애를 입을지 모를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조용한 살인자 ‘일산화탄소’
MZ세대에겐 익숙지 않겠지만 일산화탄소는 윗세대에게 ‘연탄가스’라는 명칭이 더 입에 붙는, 여러모로 친숙한 기체다. 과거 연탄을 이용한 난방이 보편적일 때는 연탄이 불완전 연소하며 나오는 일산화탄소가 구들장을 뚫고 올라와 일가족을 모두 중독시켜 사망하는 일이 비교적 흔했기 때문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더라도 옅게나마 중독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마땅한 의료시설이 없었기에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 된다는 식의 민간요법이 해결책으로 생각되어 왔다. 물론 동치미 국물이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고, 일산화탄소가 가득 찬 공간을 벗어나 충분히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동하니 시간을 두고 의식을 차리는 것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의식을 찾았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치료 여건도 갖춰지지 않았으니 후유증 등을 파악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의식을 찾았다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믿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일산화탄소에 고농도로 노출될수록, 그리고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중대한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가령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의 최소 20%는 의식 회복으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발생하는 지연성(遲延性) 신경학적 후유증을 겪는다. 운동신경 쪽이 손상되면 운동 장애가 생기고, 기억과 관련된 부분이 손상되면 치매 유사 증상이 발생하는 식이다. 이런 증상이 발현되기까지가 6개월에서 1년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지다 보니 연탄을 쓰던 즈음에는 발병 원인으로 일산화탄소를 짚지 못하고 그저 다른 원인이겠거니 넘겼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일산화탄소가 매우 악독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는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적혈구에 산소보다 더 높은 친화성(親和性)을 갖고 달라붙어, 적혈구에 산소가 운반되지 못하게 막는다. 산소 소모량이 큰 뇌와 같은 장기에는 치명적인 일이다. 일시적으로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뇌세포가 조금씩 죽어가고, 이때 발생한 상처와 축적된 독소는 뇌 내에 남아 장기적인 손상을 유발한다. 단지 무색무취의 유독성 가스인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장기적 손상까지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고압산소치료, 서울에 14인이 최대
일산화탄소 사건이 벌어진 뒤라면 일단 치료가 중요해진다. 가장 우선시되는 건 고압산소치료기가 갖춰진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하는 것이다. 대기압보다 높은 고압의 산소를 공급하면 일산화탄소가 적혈구에 대한 친화성이 높다고 한들, 물량 공세로 투입된 산소 일부가 적혈구와 결합해 산소를 공급한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이런 고압산소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2020년 12월 기준 대한응급의학회의 ‘전국 고압산소챔버 운영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이런 ‘고압산소치료’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최대 14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서울아산병원에서 보유한 10인용 기구가 있어 망정이지, 이 설비가 없다면 1000만명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에서 고작 4명만 동시에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경기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25명이 더해져 수도권 내에서 총 39명이 동시에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45인승 관광버스의 승객을 모두 수용하기도 난망한 수치다.
수도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북에는 안동시 안동병원이 전부이고, 충북에는 관련 시설이 없다가 2021년 말에 효성병원에서 고압산소치료기를 도입했다. 연탄을 이용한 난방이 줄어들어 연탄가스 흡입 사고가 줄어들긴 했지만 번개탄 등을 이용한 자살 사고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걸 고려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빗겨나갔지만 대규모 인원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경우라면 수용할 방법이 없다. 지방에서 재난이 발생한다면 사망하거나, 치료 적기를 놓쳐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광주의 저발전과 대규모 상업시설 부재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지만 대규모 쇼핑시설에 앞서 지역에 갖춰져야 하는 건 해당 지역에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의료적 설비다. 지방과 서울 간의 발전 격차가 대선의 일회성 소재로 휘발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 발전과제로 남길 바란다.
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697100017&ctcd=C09